바르고, 넣고, 먹는다: 약국 치질약 3종 완전 비교 (연고·좌제·디오스민)
늦여름 더위가 가시지 않은 어느 저녁, 한 손님이 계산대 앞에서 망설이다 목소리를 낮췄습니다. “저기… 치질약 좀 주세요. 바르는 거요.” 그러고는 덧붙이시더군요. “근데 저번 약국에서는 먹는 약을 주던데, 그건 또 뭐가 다른 거예요?”
바르는 연고는 항문 바깥쪽 피부의 통증과 가려움을 잡고, 넣는 좌제는 손이 닿지 않는 항문관 안쪽까지 약을 배달하며, 먹는 정맥순환개선제는 늘어진 혈관 자체의 탄력과 붓기를 안에서부터 손봅니다. 셋은 담당 구역이 다른 약이에요. 어디가 아픈지에 따라 고르고, 심할 때는 함께 씁니다.
1. 치핵은 혈관이 늘어난 병이라, 약도 세 갈래입니다
치핵(痔核)은 항문관 안의 혈관 쿠션 조직이 반복된 힘주기와 복압으로 부풀어 덩어리를 이루거나 출혈하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위치예요. 항문관 안쪽의 내치핵은 통증 신경이 적어 아프기보다 선홍색 출혈과 탈출로 나타나고, 항문 입구 바깥 피부의 외치핵은 신경이 예민해 찌르는 듯한 통증이 주된 증상입니다. 안쪽 문제인지 바깥쪽 문제인지에 따라 약이 갈리는 이유예요.
내치핵은 1도(가끔 피만 비침)부터 2도(배변 시 나왔다가 저절로 들어감), 3도(손으로 밀어 넣어야 들어감), 4도(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음)까지 나눕니다. 약국의 일반의약품이 실질적으로 힘을 쓰는 구간은 1~2도의 초기, 그리고 3도 이상에서 수술 전후의 증상 완화입니다.
2. 바르는 약은 성분표를 읽으면 쓸 자리가 보입니다
바르는 약은 손이 닿는 범위, 항문 입구와 그 주변의 통증·가려움·부종을 빠르게 눌러줍니다.
푸레파인연고(리도카인 30mg/g 등) — 다섯 성분이 각자 일합니다
푸레파인연고는 1g당 리도카인 30mg, 테트라히드로졸린염산염 0.5mg, 알란토인 10mg, 클로르헥시딘염산염 5mg, 멘톨 5mg을 담고 있습니다. 리도카인이 신경 신호를 차단해 통증과 가려움을 끄고, 테트라히드로졸린염산염이 혈관을 수축시켜 부기와 출혈을 줄이며, 알란토인이 점막 회복을, 클로르헥시딘이 소독을 맡아요. 성인·만 15세 이상에서 1일 3회 이내로 바르고, 주입기를 끼워 1회 2g씩 직장 안에 넣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멘톨의 화한 느낌이 헐어버린 부위에 자극이 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럴 때 쓰는 게 푸레파인마일드연고입니다. 멘톨을 뺀 것 말고는 나머지 네 성분의 함량이 같아요. “마일드”라는 이름은 자극원 하나를 덜어냈다는 뜻입니다.
헤모렉스크림(프라목신염산염 10mg/g) — 기저질환이 있을 때의 선택지
헤모렉스크림은 프라목신염산염 10mg/g 단일 성분 크림으로, 성인 기준 1일 3회까지 환부에 직접 바릅니다.
성분이 하나뿐이라 심심해 보이지만 그 점이 강점이 되는 상황이 있어요. 푸레파인 계열에 든 테트라히드로졸린염산염은 혈관수축제라서 심장질환, 고혈압, 갑상선질환, 당뇨병이 있는 분에게는 쓸 수 없거든요. 혈압약을 드시는 손님께 치질 연고를 권할 때 성분표를 다시 들여다보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프록토세딜연고(히드로코르티손 5mg/g 등) — 염증이 앞설 때, 짧게
프록토세딜연고는 1g당 히드로코르티손 5mg, 디부카인염산염 5mg, 네오마이신B황산염 10mg, 에스쿨로시드 10mg 구성으로, 아침·저녁과 배변 후 1일 1~3회 소량씩 바릅니다. 스테로이드가 염증과 부종을 빠르게 가라앉히고, 디부카인염산염이 마취를, 네오마이신B황산염이 감염 예방을 맡아요.
효과가 빠른 대신 오래 쓸 약은 아닙니다. 항문 주위 피부는 얇고 접혀 있어 흡수가 잘 되는 부위라, 길게 쓰면 피부가 얇아지거나 곰팡이 감염이 끼어들 수 있어요. 일주일 안팎에 가라앉지 않으면 진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3. 넣는 좌제는 연고가 닿지 못하는 곳까지 갑니다
좌제는 내치핵이 있는 항문관 안쪽에 약을 직접 놓기 위한 제형입니다. 배변할 때 피는 비치는데 만져지는 덩어리가 없다면, 문제는 손끝이 닿는 곳보다 안쪽에 있을 가능성이 커요. 겉에 아무리 발라도 헛돌 수밖에요.
푸레파인좌제는 1개당 리도카인 60mg, 알란토인 20mg, L-멘톨 10mg, 클로르헥시딘염산염 5mg, 테트라히드로졸린염산염 1mg으로 같은 이름의 연고보다 함량이 대체로 두 배입니다. 성인·만 15세 이상에서 1회 1개를 1일 3회 범위로 직장 안에 넣어요.
좌제는 넣는 방법에서 의외로 많이 실패합니다.
- 배변을 먼저 끝내고 좌욕 후 물기를 닦습니다. 넣자마자 변의가 오면 약이 그대로 나와요.
- 뾰족한 쪽을 앞으로 잡고, 옆으로 누워 위쪽 무릎을 당긴 자세에서 3~4cm 깊이로 밀어 넣습니다. 괄약근을 지나야 자리를 잡아요.
- 넣은 뒤 10~15분은 누워 계세요. 체온으로 녹아 퍼집니다. 여름철엔 냉장 보관했다 꺼내면 수월해요.
4. 먹는 약은 혈관 자체를 손봅니다 — 디오스민과 트록세루틴
먹는 치질약은 진통제가 아니라, 늘어지고 새는 정맥 벽의 탄력을 끌어올려 붓기와 출혈을 줄이는 정맥순환개선제입니다. 5분 만에 시원해지지는 않지만, 반복되는 재발과 묵직한 불편감에는 이쪽이 맞아요.
치센캡슐(디오스민 300mg)은 정맥부전 관련 다리 중압감·통증, 모세혈관 취약증의 보조치료, 치질 관련 징후의 치료에 허가돼 있습니다. 성인 1회 300mg을 1일 2회 점심·저녁 식사 시 복용하고, 치질이 악화된 시기에는 1일 1,200~1,800mg까지 늘릴 수 있어요. 2025년 10월 말에는 함량을 두 배로 올린 치센정600mg(디오스민 600mg)이 나왔고, 치질에는 1회 600mg을 1일 2~3회 식사 시 복용합니다. 급성기에 하루 대여섯 캡슐을 삼키기 부담스러웠던 분들은 알약 수가 줄어드는 셈이죠. 같은 성분의 베노론캡슐(디오스민 300mg), 알약이 어려운 분을 위한 뉴베인액(트록세루틴 3,500mg)도 약국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효과는 정직하게 말씀드릴게요. 이 계열 약이 치핵의 출혈과 증상을 줄인다는 임상 근거는 있지만, 근거의 질이 아주 튼튼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코크란 리뷰도 도움이 될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포함된 연구들의 방법론적 한계를 함께 지적했어요. 좌욕과 배변 습관 교정 위에 얹는 보조 수단으로 보시는 게 정확합니다.
5. 한눈에 보는 약국 치질약 비교표
| 제품(성분) | 제형 | 주요 성분 함량 | 이런 분께 |
|---|---|---|---|
| 푸레파인연고(리도카인 등 5종) | 연고 | 리도카인 30, 테트라히드로졸린염산염 0.5, 알란토인 10, 클로르헥시딘염산염 5, 멘톨 5 (mg/g) | 통증·가려움·부기가 함께 있는 바깥쪽 치핵 |
| 헤모렉스크림(프라목신염산염) | 크림 | 프라목신염산염 10mg/g | 혈관수축제를 피해야 하는 분 |
| 프록토세딜연고(히드로코르티손 등 4종) | 연고 | 히드로코르티손 5, 디부카인염산염 5, 네오마이신B황산염 10, 에스쿨로시드 10 (mg/g) | 염증이 두드러질 때, 단기간만 |
| 푸레파인좌제(리도카인 등 5종) | 좌제 | 1개당 리도카인 60, 알란토인 20, L-멘톨 10, 클로르헥시딘염산염 5, 테트라히드로졸린염산염 1 (mg) | 덩어리 없이 배변 시 출혈이 있는 내치핵 |
| 치센캡슐(디오스민 300mg) | 캡슐 | 디오스민 300mg | 1일 2회, 악화 시 1일 1,200~1,800mg |
| 치센정600mg(디오스민 600mg) | 정제 | 디오스민 600mg | 치질에 1회 600mg 1일 2~3회 |
| 뉴베인액(트록세루틴 3,500mg) | 액제 | 트록세루틴 3,500mg/포 | 하루 한 번, 식사 중 |
6. 약보다 먼저 손봐야 할 것들
약을 잘 골라도 원인이 그대로면 재발합니다. 변기에 앉아 휴대폰을 보다 10분이 훌쩍 지난 적, 있으신가요?
- 변기에 앉는 시간은 3분 안쪽으로. 오래 앉은 자세가 항문 정맥에 피를 고이게 합니다.
- 온수 좌욕은 하루 2~3회, 한 번에 5~10분. 약과 나란히 가는 기본입니다.
- 섬유질과 수분. 변비로 딱딱해진 변에 힘을 주는 순간이 치핵을 키웁니다. 변비가 잦다면 완하제를 습관적으로 집기 전에 약사와 성분부터 상의하세요.
- 배변 후 물티슈로 세게 문지르지 않기, 술과 매운 음식 줄이기도 함께 가야 합니다.
7. 이럴 땐 약을 사지 말고 병원부터 가세요
- 검붉은 피, 짜장처럼 검은 변, 피가 변에 섞여 나오는 경우. 치핵 출혈은 대개 휴지나 변 표면에 묻는 선홍색이에요.
- 50세 이상에서 처음 생긴 직장 출혈. 치핵과 대장 종양은 증상이 겹쳐 대장내시경 감별이 필요해요.
- 배변 습관 변화, 변이 가늘어짐, 설명되지 않는 체중 감소, 빈혈 증상이 함께 있을 때.
- 밀어 넣어도 들어가지 않는 덩어리(4도 치핵), 갑자기 딱딱하고 새파랗게 부풀며 극심하게 아픈 경우, 열이 나며 항문 주위가 욱신거릴 때.
- 일반의약품을 1주일 정도 제대로 썼는데도 그대로이거나 심해질 때.
-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일 때. 디오스민 제제는 수유부에게 투여하지 않고, 임부에게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고려합니다.
약국 현장에서 자주 묻는 질문
Q. 연고와 먹는 약을 같이 써도 되나요?
네, 함께 쓰는 조합이 오히려 일반적입니다. 작용하는 자리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바르는 연고나 좌제는 아픈 부위의 통증·부종을 직접 누르고, 치센캡슐(디오스민 300mg) 같은 먹는 약은 혈관 쪽을 안에서 손봅니다. 다만 바르는 약을 두 종류 이상 겹칠 이유는 없고, 스테로이드가 든 제품의 장기 병용은 피하셔야 해요.
Q. 좌제와 연고 중 뭘 사야 할지 모르겠어요.
만져지는 덩어리가 있고 앉을 때 아프면 연고, 만져지는 건 없는데 배변 시 피가 비치면 좌제입니다. 통증이 주된 증상이면 바깥쪽(외치핵), 출혈과 빠져나오는 느낌이면 안쪽(내치핵)일 가능성이 커요. 둘 다면 푸레파인연고처럼 주입기가 있는 제품이 편합니다.
Q. 치센정600mg이 치센캡슐보다 좋은 약인가요?
아니요, 성분은 디오스민으로 같고 한 알의 함량만 다릅니다. 치센캡슐(디오스민 300mg)은 1회 300mg 1일 2회가 기본이고, 치센정600mg(디오스민 600mg)은 치질에 1회 600mg을 1일 2~3회 복용하는 고함량 용법이에요. 급성기에 알약 개수를 줄이려면 고함량이 편합니다.
Q. 먹는 치질약은 얼마나 오래 먹어야 하나요?
급성기에 고용량으로 며칠 쓰고 이후 유지 용량으로 이어가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병기와 증상에 따라 달라져 “몇 주까지”라고 못 박기는 어려워요. 다만 2~4주를 복용했는데도 출혈이나 탈출이 그대로라면, 약을 늘리기보다 대장항문 진료로 병기를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약사의 시선
처음의 그 손님께는 두 가지를 안내해 드렸습니다. 앉을 때 아프고 만져지는 게 있다고 하셔서 바르는 약으로 가되, 혈압약을 드시고 계셨기에 혈관수축 성분이 없는 헤모렉스크림(프라목신염산염 10mg/g)으로 잡고 저녁 좌욕을 함께 부탁드렸어요. 열흘쯤 뒤 다시 오셔서 “좌욕이 약보다 낫더라”며 웃으셨습니다.
치질은 부끄러운 병이 아니라 흔한 병입니다. 그런데 부끄럽다는 이유로 약국 문 앞에서 돌아서거나, 반대로 몇 달씩 연고만 바르며 버티다 상태를 키우는 분들을 자주 봅니다. 약은 시간을 벌어주는 도구예요. 그 시간에 배변 습관을 고치면 약을 줄일 수 있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으면 그건 약이 아니라 진료가 필요하다는 신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느 쪽에 서 계신가요?
참고 자료
- 약학정보원 — 치센캡슐(디오스민 300mg) 의약품 정보
- 약학정보원 — 치센정600mg(디오스민 600mg) 복약안내문
- 약학정보원 — 푸레파인연고·푸레파인좌제 의약품 정보
- 약학정보원 — 헤모렉스크림(프라목신염산염) 의약품 정보
-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 치핵(hemorrhoid)
- Cochrane Library — Phlebotonics for haemorrhoids
본 글은 일반적인 의약품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며, 개인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같은 증상이라도 나이, 기저질환, 함께 복용 중인 약에 따라 선택해야 할 약이 달라집니다. 증상이 1~2주 이상 지속되거나 악화된다면, 또는 위에 정리한 위험 신호에 해당한다면 반드시 의사·약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종아리가 보내는 신호: 다리 붓고 저릴 때 약국 정맥순환개선제 성분별 비교
- 치질 총정리: 치핵·치열·치루 구분법과 단계별 대처
- 케토톱부터 신신파스까지 붙이는 파스형 소염진통제 성분별 완전 비교
#치질약 #치핵 #치센캡슐 #디오스민 #푸레파인연고 #푸레파인좌제 #헤모렉스크림 #정맥순환개선제 #일반의약품 #약사블로그원본 마크다운은 Google Drive 블로그원고 / 2026-09-05 폴더에 있습니다. 주제 기록은 blog-topic-log.md에 갱신해 두었습니다.
이월 미해결 — k-crypto.kr 전역 면책 문구가 아직 k-drug.com 의료 면책 문구입니다 (08-19부터 15회차째). 투자 면책 문구로 교체가 필요합니다.